앨리스의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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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우신 하나님의 은혜... by Kircheis

일어나 보니 새벽 3시 50분께...
11시 반 경에 잠자리에 들었으니 한 4시간 정도 잠을 잔 것 같기는 한데, 왠지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꿈 속에서 나는 어딘가의 대학에 있었던 것 같다.
어딘지도 잘 모르겠고, 뭘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매점 같은 곳에 들어가니 왠 여학생 둘이 있더라.
물론 꿈은 내 지나온 기억의 새로운 구성이요, 조합과도 같은 것이지만, 명백히 내 기억에는 없는 여자들이더라.
나는 갑자기 튀기 시작했다. 한 번 뛰어서 2층의 벽에 튀겼다가 아예 공중 부양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나를 쳐다보는 그 여학생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여학생들 앞에 내려섰다.

아마도 나는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 같다.
마땅히 이렇다할 것없이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보니 현실의 내 처지가 너무 무기력하게 여겨졌나 보다.
그래서 인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삶의 방향성을 가졌던 대학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같다.
물론 서울에도 들지 못하는 지방대이기는 했지만, 그런 지방대였기에 있을 수밖에 없던 불확실한 미래를 그냥 불확실하게 남겨둘 수 없었던 만큼 당시의 나로서는 전혀 근거도 없었던 프로그램 개발이라는 목표를 두고 노력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그렇다고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나는 하는 일없이 백수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단지 약국을 전전하며 약이나 팔아야 하는 자연과학 전공자의 삶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 프로그램 개발을 배우기 위해 학원을 찾았고, 그 속에서 우연찮게 프로그램 개발자가 될 수 있었다.

나는 기도했다.
분명 심신이 피곤한 것이 맞는데, 왜 이런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깨어 맑은 정신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이 고요의 시간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에... 하나님이 나에게 기도하라고 명하신 시간이라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놓고 기도해야 하는 지도 막막했다.
근 1년간의 내 삶은 남의 목표에 맞춰져서 이도저도 아닌 삶이었다. 3년넘게 일했던 회사에서는 밀린 급여와 퇴직금이 오천이 넘었지만, 그래도 그 아이템의 가능성을 보고 다시 1년을 쫓아 다니며 일했다.
하지만, 그렇게 투자한 1년의 기간동안 회사에서는 아무것도 벌어들일 수가 없었다.
나는 고민했다. 이런 심각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뒤집어 달라고 하나님께 계속해서 기도했다. 하지만, 그 무엇하나 뒤집히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래서 새로운 새로운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가진 약간의 재주를 생각하고 그것을 이용한 사업을 생각했다.
글쓰는 취미가 있으니 소설을 써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고, 프로그램 개발 경력을 살려 사운드와 이미지에 대한 기반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프로그램의 개발도 생각했다.
모바일 대세에 맞춰 안드로이드나 iOS의 프로그램도 그 scope에 넣었고, 많은 사람들 특히나 아이들의 교육이나 자료의 공유를 위한 새로운 SNS의 개발도 생각해 보았다.

생각이 많으면 일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다양한 생각들로, 이것을 해야할지 저것을 해야할지 망설이는 동안 이 1년이 후딱 지나가고 말았다. 답도 없는 회사로부터 어떻게 밀린 급여 내지는 새로운 일거리라도 받아볼 심산으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1년을 보내고 만 것이다.

이런 미련한 나에게 하나님은 새벽의 기도를 통해 새로운 것을 깨닫게 하셨다.
바로 창조적인 삶이다.
아무것도 없던 태초 이전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말씀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구분하여 지으셨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되어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들을 지으신 것이다.
그렇게 지으신 피조물을 세상의 과학자들은 관찰하고, 그것에 주어진 규칙을 찾았다.
그리고, 그러한 규칙들로 다른 새로운 것을 관찰하고 그것에 기존에 먼저 지어진 규칙을 적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왔다.
그것을 처음 지으신 하나님께서 부여한 새로움을 새롭게 받아들일 생각은 하지 않고, 이미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새로운 것에 자신들의 낡은 옛것을 대입하여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학적 태도는 바르지 못하다.
물론 밝혀진 사실들로 새것을 대하면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새롭게 알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꼭 정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들이 갖고 있는 속성이 10000이라고 할 때, 그것을 해석하는 과학자의 그 속성을 10001이라고 규정을 한다.
그것은 1 이라는 차이를 갖지만, 그냥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처음 접하는 과학자들은 그것이 완벽한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것들을 해석하기 시작한다.
물론 처음에는 10001을 이용해서 다른 것들을 해석하는 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1 이라는 차이는 그 단계를 더해가면서 점점 더 큰 오차로 변해간다.
그리고, 더 나중에는 완전히 새로운 이론이나 사실을 접하게 되면서 그 10001이라는 사실은 완전히 부정되어진다.

그렇게 부정되어진 것들이 천동설이요, 중세 이전의 과학들이고, 그렇게 새롭게 받아들여진 것들이 지동설이요, 빅뱅이며, 진화론이다.
현대 인류에게 지동설은 이제 완전한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빅뱅이나 진화론은 그렇지 못하다.
빅뱅이나 진화론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극명하게 두가지로 구분된다. 사실로 믿거나 믿지 않거나...
현대의 물리학에서 빅뱅은 처음에는 이론으로 자리를 잡았으나, 여러가지 오류들로 인해 더 이상 이론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또한, 진화론은 아직까지 진화를 거듭할 수록 늘어나는 유전정보에 대한 해명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진화론이 사실이라 주장하고, 그 진화론을 설명하기 위한 시발점으로서 빅뱅을 받아들이고 있다.
왜일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능력이신 예수님,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들이 아는 지식 내에서 그럴 듯해 보이도록 억지로 그 연결 고리를 만들어서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는 마치 그것이 엄연한 사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당장은 자신들의 눈에 합리적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 속에 쌓여있는 오차들은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많은 잘못들을 만들어 나가게 될 것이다.

창조적인 생각이 필요하다.
새로운 뭔가를 대했을 때, 과거의 어떤 기준들을 이용해서 억지로 새것의 규칙을 찾을 것이 아니라, 새것은 완전히 새롭게 다뤄야 할 것이다.
유사한 것이 보인다고 해서 먼저 규정하고 살펴볼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대하여 새롭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발견된 규칙이나 속성들이 이전의 것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 지를 살펴야 그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의 범위를 줄일 수 있고, 그러한 과정에서 언젠가 완벽한 하나의 진실이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삶을 돌아보았다.
프로그램 개발자로서 15년 가량의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갖게 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물론 15년이상의 실력은 갖췄다고 본다.
하지만, 이로 인해 어느 샌가 내가 접하는 사람들을 내 기준으로 판단해 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었다.
연차가 부족한 개발자들을 무시하고, 너보단 내가 더 잘 한다는 생각으로 가르치듯이 일을 함께 해 왔다.
그동안 해온 경력이 있다보니 어느 정도 새로운 아이템에 대해 내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해 왔고, 거기에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내가 가진 기술을 접목시킬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분명 개발자나 기술자가 제품을 대하는 입장과 고객이 제품을 대하는 입장이 틀리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런 입장차를 알기에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나에게 남은 것은 아집과 교만이며, 어느 새 몸에 베어버린 게으름뿐이다.
언뜻 보기에 열심히 살아왔고, 세상의 트렌드처럼 잠깐 발생하는 어려움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다시 유행처럼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나에게 좋을 수는 없다. 유행처럼 돌아올 때는 더 높은 수준의 기술과 다 더양한 서비스를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그 때 나는 다시 그것에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새 대학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 근거도 없이 아는 것도 없었던 프로그램 개발이라는 분야에 첫 발을 내딛었던 그 때가 그립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시작하려 한다.
이제까지 처럼 남의 밑에서 남들이 요구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새로운 물결을 만들지 못한다.
내가 가진 능력과 지식으로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하나님처럼 완전히 없던 것을 새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지만, 40념 넘게 살아오면서 나에게 쌓여져 온 지식과 능력을 이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고 도전해야 한다.
남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레드오션보다는 내가 새롭게 만들어 가는 블루오션이 필요한 때이다.
내 몸에 익은 게으름과 아집을 말끔히 털어내고, 못 받은 돈 오천에 대한 미련을 접어두고, 이제는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때이다.

이 새벽에 이런 나의 아침을 깨우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이렇게 글로 남기게 하신 하나님께 내 모든 삶을 통해서 영광돌리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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