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의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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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2] by Kircheis

신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양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천지를 창조한 전능자로서의 유일신의 종교가 있는가 하면,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보다는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춘 초월자로서의 신도 있다. 또 한편 그런 초월자로서의 신보다는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다양한 생물, 무생물들이 저마다의 영의 형태를 띄고 우리 주변을 살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사람은 죽어서 귀신이 된다거나, 귀신이 되어서 생전에 자신과 가까웠던 사람들을 지켜준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런가하면 철저히 신은 없다고 믿으며 세상은 오직 자신의 맨몸 하나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대개의 경우 어떤 식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은 그들이 우리의 기도를 듣고 소원을 들어주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철저히 신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런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내지는 내가 살기위해서는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는 - 남을 이용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신을 믿건, 믿지 않건 공통된 것은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를 도와준다면 훨씬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럼 신을 믿는 사람들이 정말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취하는 행동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물론 대표적인 것은 기도가 될 것이다. 자신이 믿는 그 신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줄 지 들어주지 않을 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그 힘든 상황 처지를 해결하기에 자신의 능력이 모자란 것을 알기에... 혹은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음을 알기에 그것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능력을 가진 누군가를 찾게된다. 그리고, 그 존재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매달려 본다. 물론 절박한 심정이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신을 찾는다.
그 신에게 자신이 보일 수 있는 최선의 형태로 간절함을 표시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부적을 적거나, 굿을 해서 최대한 악한 기운을 막기 위한 노력을 다한다. 그 노력에 끝에 자신의 소원이 이뤄지면 뛸 듯이 기쁜 마음에 다시 그 신에게 감사를 표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반면 신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어떤가...그들은 우선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는 지 최선을 다해 찾아본다. 그리고는 자신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자신 주변의 힘을 가진 누군가를 찾아간다. 물론 그 누군가에게 자신이 보일 수 있는 충분한 성의를 표시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은 게으른 생물이다. 모든 어려운 일에 도전하고 성취하고자 하는 의욕과 능력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쉽게 타성에 젖어드는 것도 인간이다. 세상 모든 일을 자신이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고, 또한 그렇게 노력하다가도 어느 순간 자신으로서도 어쩌지 못할 벽에 걸리면, 주변의 누군가에게 손을 벌리게 되고, 그렇게 쉽게 일을 처리하게 되면 그것이 하나의 대안으로 자신의 머릿속에 박히게 된다. 그렇게 어려울 때마다 계속 다른 사람에게 손을 벌리다 보면... 그것도 특정한 누군가에게 손을 벌리다보면, 그 누군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자신이 믿는 든든한 뒷배가 되고 만다. 결국 뒷배가 된 그 누군가는 신을 믿지 않는 다는 사람에게 있어서 신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동의하지 못하는 아신교들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힘이 부족해 다른 사람에게 손을 벌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 만큼 자신도 그에게 해준 일이 많다거나 아니면 그에게 충분한 댓가를 취했으니 관계없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 전에 불과 몇 줄 위에 적은 문장을 다시 살펴보기 바란다. 사람은 타성에 젖기 쉽다는 말을 말이다.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분명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자신에게 닥친 자신이 해결하지 못할 문제를 해결해 줄 능력을 갖춘 사람을 계속되는 어려움으로 인해 습관적으로 믿는 것과 신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 뭐가 다른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준 사람에 대한 성의 표시와,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고 일이 잘 풀리도록 해준 신에게 드리는 감사의 표시가 뭐가 다른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충분히 혼자 살 수 있을 만큼 강해 보일 수 있지만, 자신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발생하면 그 특유의 연약함으로 비빌 언덕을 찾게 되고, 그것이 계속되면 또한 특유의 게으름으로 습관이 된 의지하는 버릇이 발동하게 된다. 결국 신을 믿지않는다는 사람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자신이 아닌 신이 생기고 마는 것이다. 물론 그 믿는 대상이 사람이니, 신이 아니지 않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애초에 믿고 있슨 조상신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을 비롯한 민족 혹은 나라에서 모시는 신이라는 존재들은 대부분 그들의 처음 살 터전을 마련한 그들의 조상 곧.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지금 당신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그 누군가도 어느 새 당신의 가슴 속에서 신처럼 모셔지고 있을 지 모른다.

이쯤되면 한 가지 확실한 것이 보인다. 사람은 절대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신을 믿는 사람이나,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나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누군가가 나의 존재를 인정해 줘야 나는 살아있는 것이다.
인류가 멸망하면 설령 지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구는 없는 것이 된다.
양자역학에서는 뚜껑을 열어봐서 고양이가 있으면 고양이가 있는 것이고, 고양이가 없으면 없는 것이다. 만약 뚜껑을 열지 않는다면 고양이의 유무를 알 수 없으니 그것은 고양이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철학자들은 말한다. 사람이 없으면, 우주는 있어도 그 존재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우주는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세상 어느 구석을 살펴보더라도 세상에 인간만큼 위대한 존재는 없다. 인간처럼 생각하는 힘을 가진 어떠한 존재도 없어 보인다. 그런 인간이 세상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들이 우리 인간들을 위해 어떻게 사용될 지의 여부 역시 관리한다. 세상 구석구석의 모든 존재들에게 그것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이니, 세상이 그 의미를 부여받았음에 감사하고, 그 존재를 인정해 준 사람에게 감사를 표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렇게 세상에 대해 의미를 부여해 준 인간이 신이란 존재를 인정해 준다면, 그 신이란 존재 역시 사람에게 감사를 표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게 과연 잘된 생각일까?
18, 19세기까지 정말 특이한 인간이 아닌 이상은 서구 열강들은 창조론을 믿었다. 그 창조론의 근거는 오로지 창세기 1-2 장의 기록 밖에는 없었다. 당시에는 종교를 갖고 있건 갖고 있지 않던 간에 세상의 시작을 알 수 있는 것이 창세기 밖에는 없었다. 물론 다른 여러 기록들이 있지 않았냐고 할 지 몰라도 대부분은 유대의 랍비들이 창세기 기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름의 뼈와 살을 붙인 저작물이었고, 그런 기록 중에는 랍비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창작물도 있다.
그에 비해서 동양의 경우 세상의 시작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없고, 그에 해당하는 신화만이 몇가지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역시도 세상의 시작을 확실히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역시나 신화인 만큼 비유적, 상징적인 표현들이 강하고, 세상의 시작보다는 신화속 신들, 즉 그들 민족의 시조들의 일대기를 기록한 지극히 민족 중심적(?)인 내용들이 강하다.
어쨌든 서구에서는 당시에 이 창조론에 대해서 크게 이의를 가지는 사람들이 없었으나,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열강의 정복시대를 거치면서 서구사회에서는 여러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접하게 된다. 그중 가장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이론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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