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의 토끼

javahawk.egloos.com

포토로그 방명록


최근 포토로그


종교란...[3]이슬람 by Kircheis

무척 오랜 만에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 어느새 게을러져서는 글 쓸 틈이 없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던 것을 이제 다시 시작하려니 여러가지로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우선은 요근래 여러가지 의미로 hot issue가 되고 있는 문제를 다시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종교에 대한 세번째 글이다.

이번에는 이슬람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이슬람교는 무함마드가 히라산 동굴에서 명상 중 받은 '무함마드여, 그대는 알라의 사도이다.'라는 계시를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을 그의 부인인 하디자가 자신의 사촌인 나우팔에게 설명했고, 나우팔은 그가 만난 것이 대천사 가브리엘이었다고 설명했다. 하디자는 그런 그를 예언자로 여겨 최초의 무슬림이 되었다.
처음의 이슬람은 분명 평화의 종교가 확실했지만, 무하마드가 메디나의 최고 통치자가 되면서 이전에 받은 계시가 새로운 계시로 대체되었다. AD 624년 이후 그가 말한 새로운 계시는 무슬림들에게 성전을 촉구한다.

يَا أَيُّهَا الَّذِينَ آمَنُوا قَاتِلُوا الَّذِينَ يَلُونَكُم مِّنَ الْكُفَّارِ وَلْيَجِدُوا فِيكُمْ غِلْظَةً ۚ وَاعْلَمُوا أَنَّ اللَّهَ مَعَ الْمُتَّقِينَ ( 9:123 )
해석 1 ) 믿는자들이여 너희 가까이 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투쟁하고 그들로 하여금 너희가 엄함을 알 게하라 하나님은 항상 정의로운 자들과 함께 하시니라
해석 2) 무슬림들이여. 너희가 얼마나 잔인한지를 알 수 있도록 가까이 있는 불신자들과 싸우라. 알라는 경건한 자들과 함께 계시느니라.

이슬람에서는 꾸란의 번역을 허용하지 않는다. 번역을 하면 번역자의 주관적인 생각이 가미되면서 내용이 변질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꾸란 9장 123절의 경우도 이와 같이 다르게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 있어서 이슬람의 경전은 최초 무함마드가 받은 계시에서 조금도 틀리지 않다고 하는 것이 기독교의 성경에 대한 해석과 다른 차이점이라 하겠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꾸란의 내용을 해석한 제목들이 대부분 "꾸란의미의 한국어 번역"이라는 식으로 나타난다. 절대 한국어판 꾸란이 없이, 단순히 해석의 편의를 위한 '의미의 번역'이라는 식의 표현들로 나타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위 두 가지 해석의 예에서 보이는 '투쟁'과 '싸우라'-قَاتِلُوا-는 말은 아랍어로 까탈라(Qatala, 죽이다)라는 말에서 파생된 까아탈라(Qaatala)로서 죽이도록 노력하라는 의미이다. 즉, 이 명령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상대를 죽이기 위해 잔인하게 싸우라는 뜻이다.
이 후 이슬람의 역사는 정복으로 진행되었다. 주로 알라가 아닌 우상을 숭배하던 유목민족들에 대한 이 정복역사는 유목민족들로 하여금 죽지 않기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내지는 복종하는 척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무하마드는 그들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 49:14 ).

여하튼, 무하마드가 메디나의 최고 통치자가 된 서기 624년 이후로 이슬람은 힘이 없어서 참아야 했고, 억눌러왔던 분노를 참을 이유가 없어졌다.

لَا إِكْرَاهَ فِي الدِّينِ ۖ قَد تَّبَيَّنَ الرُّشْدُ مِنَ الْغَيِّ ۚ فَمَن يَكْفُرْ بِالطَّاغُوتِ وَيُؤْمِن بِاللَّهِ فَقَدِ اسْتَمْسَكَ بِالْعُرْوَةِ الْوُثْقَىٰ لَا انفِصَامَ لَهَا ۗ وَاللَّهُ سَمِيعٌ عَلِيم ٌ(2:256)
해석)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 진리는 암흑속으로부터 구별되니라. 사탄을 버리고 알라를 믿는 자 끊기지 않는 단단한 동아줄을 잡았노라. 알라는 모든 것을 들으시며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라.

당시 메디나에는 무하마드를 비난하는 시를 지은 아스마라는 여인이 있었다. 무하마드는 누가 나를 위해 마르완의 딸을 처치하겠냐고 묻자. 아스마와 같은 민족 출신의 무슬림이 자원했다. 그는 밤에 아스마의 집에 숨어들어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잠들어 있는 아스마를 칼로 죽이고 돌아왔다. 다음날 그녀의 살해 소식을 들은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이 여인의 죽음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나와 싸우자"고 공공연히 도전을 했으나, 심지어 아스마의 남편조차 입을 다물수 밖에 없었다. 이미 이슬람의 힘이 너무나 강대해진 까닭이었다.

물론 무하마드가 죽은 사후에 이런 억지로 개종한 무리들이 가만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너나 할 것없이 이전의 자신들의 종교로 돌아갔다. 이것을 보다 못한 이슬람 지도부는 서둘러 무하마드의 친구였던 아부 바크르(Abu Bakr)를 지도자로 세웠다. 바크르는 3개월 동안 이슬람을 버리고, 개종한 8만명을 찾아 죽였다. 꾸란의 내용을 실천한 것이다.

이렇듯 초기 이슬람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다. 이것은 천주교의 십자군 전쟁과 별다를 것이 없다. 다만, 천주교는 교화의 칙령을 내세운 것이라면, 이슬람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계시를 내세운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물론 이슬람 경전의 어디에도 "한손에 칼을, 한손에 꾸란을"이라는 표현은 없지만, 그들의 역사는 이 짧은 한 줄의 문장에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이슬람이 이렇듯 전쟁광은 아니다. 정치계에도 보수와 진보가 있듯이, 이슬람에도 온건파와 극진파가 있다. 다른 종교와 문화에 잘 융화되어 살아가는 온건파는 극진세력과는 그 양상이 다르다.





메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