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의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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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대한 감상 by Kircheis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더니 정말 오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아직도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 지나간 2개의 태풍으로 농부는 농부대로, 어부는 어부대로 나름 고민이 많은 시기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오늘 또 비를 내려줍니다.

그렇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무미 건조한 잿빛 서울 한 복판에도 비가 내립니다.

언제나 회색이었던 도시의 건물들은 비에 젖어 그 색깔을 더욱 진하게 내비치고 있습니다.

약간 변두리에 위치한 산들은 비에 젖어 그 초록빛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에서 내린 비가 온 세상의 것들로부터 더욱 진한 빛을 끌어 냅니다.

동네 뒷산의 나무들은 여름이 오면 산을 가득 채운 그 초록을 둘 곳이 없어, 길가로 슬금슬금 내려옵니다.

비가 오고 나면 초록은 더욱 무거워져 나무들은 그 초록을 밑으로 내리웁니다.

비가 옵니다.

세상을 모두 적셔 줄 비가 옵니다.

건물의 옥상의 그 회색의 바닥에 떨어지는 비는 소리가 잘 나지 않습니다.

산 주변 도로에 세운 자동차의 지붕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가볍고도 경쾌한 소리를 냅니다.

나뭇잎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약간 탁한 듯하지만 아름다운 소리를 냅니다.

그렇습니다.

빗소리입니다.

도심의 한 복판에서 자동차의 엔진 소리들에 빗소리는 묻혀 버립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곳 저곳에 작은 물 웅덩이를 만들고는 다시 맑고 청아한 빗방울의 소나타를 들려줍니다.

고층 건물 옥상에 마련된 끽연 공간에서 듣는 빗소리는 다채롭습니다.

멀리 어디선가 질주하는 자동차의 클락션 소리가 비에 젖어 평소보다 더욱 크게 울려 퍼집니다.

머리 위로 비를 피하라고 마련된 차양막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가볍고 경쾌하게 울려줍니다.

휴지통을 겸비한 재떨이에는 어느 새 빗물이 웅덩이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더러운 웅덩이에서도 아름다운 빗방울 소리를 들려줍니다.

저 아래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어제와 다릅니다.

빨간 동그라미, 검정 동그라미, 분홍색 동그라미가 있고, 파란 물방울 무늬를 지닌 동그라미도 있습니다.

어떤 동그라미는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화려한 색을 자랑합니다.

그런 동그라미들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뭔가를 때리는 듯한 느낌의 소리를 냅니다.

 

팔을 내어 뻗습니다.

팔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그 시원함은 아침 회의 시간에 들었던 직장 상사의 호통 소리를 모두 흩어줄 듯 합니다.

가슴 속에 뭉친, 나를 답답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를 이 비가 말끔히 지워줄 듯 합니다.

신문지 한 장을 비 내리는 빈 공간에 펼쳐 놓습니다.

그 위로 비가 떨어집니다.

비는 자기가 일하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 소리를 바꿉니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비의 소리가 바뀌어갑니다.

다시 처음의 맨 바닥을 때리는 듯한 소리가 날 무렵이면, 세상의 모든 일을 싣고 있던 그 신문은 이미 분해되고 없습니다.

빗줄기가 더욱 거세어 집니다.

우산을 두들기는 빗소리가 나에게 말합니다.

당신의 근심을 털어 드릴께요…”

당신의 마음을 적셔 드릴께요…”

나는 마음이 약합니다.

이내 여태 쓰고 있던 우산을 걷어냅니다.

빗줄기가 나의 머리를 적십니다.

이내 젖어 버린 슈트의 끝단에서는 빗방울이 흘린 땀들이 송글송글 맺혀있습니다.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듭니다.

뺨을 때리는 빗방울이 따갑습니다.

마치 내가 무슨 잘못을 아는 것처럼 빗방울들은 나의 얼굴을 있는 힘껏 두들깁니다.

따갑습니다.

하지만, 기분은 좋습니다.

이 빗줄기가 만들어내는 그 아름다운 선율을 들으며, 나의 맘을 무겁게 하는 모든 짐들을 벗어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이 비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내 마음의 충전제입니다.

좋습니다.

비에 젖은 몸은 한결 더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그래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길을 달립니다.

여기저기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그들도 이 인생의 주인공이 누군지 궁금한가 봅니다.

그래, 지금 가까이 있을 때 볼 수 있는 만큼 봐 둬라. 나중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테니까…”

내일,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는 두렵지 않습니다.

나는 더욱 힘찬 발걸음을 옮깁니다.



 

PS. 집에 들어서니 마눌님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봅니다.

 니가 쳐 맞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아아마눌님의 포스는 하늘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마눌님부디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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