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의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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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일곱 번째 by Kircheis

아이들의 재능의 발굴은 부모들이 해야 할 의무이다. 자식이 어떤 재능을 갖추고 있는지를 알아내서 그 재능을 갈고 닦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부모들이 취하는 아이에 대한 관심은 교육에 집중되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게 키우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감싸고 돈다. 어디를 가든지 아이를 끼고 돌면서 아이의 자립심보다는 자신이 아이를 아끼는 마음이 우선이다. 아이가 이것을 하든지 못 하든지 관계없다. 그런 것이라면 어머니가 대신 해 주면 그만이다. 자식이 몇 살이 되든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아이를 따라다니면서 뒤치다꺼리를 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반면에 아버지들은 상황이 좀 틀리다. 그들도 물론 자식을 사랑한다. 어머니와 같은 마음이 없지 않다. 다만 아버지들은 약한 아이들이 강해지기를 바란다. 자식은 내 몸의 일부다. 자식의 능력은 나의 능력과 같다. 그러니 내 자식은 강해져야 한다. 사자가 그 새끼를 언덕 위에서 내어 던지듯, 나도 내 자식을 강하게 키워야만 한다라는 것이 대중적인 아버지들의 생각이다.

자 그럼 잠시 생각해 보자.

이런 대조적인 생각을 가진 부모가 아이를 키운다. 어찌 될 것인가? 암묵적인 타협안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아이를 강하게 키우고 싶은 아버지와 마냥 떠 안고 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 뭉쳐서, 적당히 세상을 살아갈 능력을 아이에게 물려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자기 자식에게도 받게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공교육이다. 여기에 더해서, 남들보다 좀 더 나은 위치에서 사회 생활을 하게 만들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아이들을 대학에 진학하게 만들고, 해외 유학을 다녀오게 만든다. 그리고, 자식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그들의 목표를 판사, 변호사, 의사로 어려서부터 정해 버린다. 그도 안 된다면 대기업이라도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아이들의 미래를 정해버리고는 걱정한다. 공부 잘하는 옆집 아이는 어떻더라는 둥의 얘기를 듣고 와서는 자식에게 공부를 강요한다. 아니, 공교육만 받아서는 안될 것 같으니 사교육까지 받으라고 난리다.

소문이라는 것이 무섭다.

어느 동네 어느 학교에서는 해마다 SKY에 몇 명이나 들어간다더라…’

어느 학원 다니는 애는 성적이 얼마나 올랐다더라…’

이런 소문들이 부모의 귀에 들어간다. 그러면 우리의 어머니들은 당장 孟母三遷之敎를 실천에 옮기신다. 좋은 학교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학원도 당장 바꾸신다. 물론 좋은 학교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아침 일찍 학교에 가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를 시작해 밤 10시가 넘어서야 학원 차량에 실려서 집으로 보내진다. 그리고는 다시 방에 들어가 책상에 앉아 두 눈을 부릅뜨고 공부에 매진한다. 자기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공부밖에 없다면서 말이다.

과연 그럴까? 정말 공부밖에 몰라서 그럴까?

아니다. 이런 입시 위주의 교육에 물든 아이들이 나약해 진 것이다.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평균 이상을 강요한 우리 부모들로 인해 아이들은 정말로 그들이 할 줄 알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이고, 설령 알고 있더라도 그것을 위해 필요한 도전을 해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아이들은 우리 부모들이 나약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들추자면 현재의 사회 구조와 그에 따른 교육 제도부터 따져 보고, 역사적인 요인까지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서양의 성씨들의 유래를 좀 들춰봐야 하겠다.

서양에서 성씨란 그 집안의 시조를 불렀던 이름이다.

예를 들자면 Baker는 그 집안의 시조가 빵을 굽는 일을 하면서, 주변으로부터 Baker라고 불렸다. 만약 아들의 이름이 Hans라면, 그는 Baker가의 Hans로 불린다. 이것이 일반적인 법칙처럼 통용되면서 그들 집안의 성씨가 Baker로 불려지게 된다. 이런 성씨로 예로 또 들 수 있는 것이 Smith이다. Smith의 경우는 그 집안의 시조의 직업이 대장장이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과 같다. 그럼 이들이 왜 Baker, Smith 등의 직업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일까그건 분명 초기 씨족사회 내지는 부족사회의 형성을 생각해 보아야 할 듯 싶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혼자이다. 그런 혼자의 몸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주변의 모든 위험요소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함은 물론, 그런 중에도 먹고 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혼자 어렵게 어렵게 생활을 하다보면 어느샌가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 자신의 짝을 찾게 된다. 자신의 짝을 찾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음에 찍어둔 상대가 있다고 해도 그 상대를 갖고자 하는 나 아닌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게 그 상대를 뺏기지 않고 그 상대를 자기 짝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싸움이 될 수도 있고, 달콤한 말 한 마디가 될 수 있으며, 도둑질이 될 수도 있다. 설령 그렇게 치열하게 다퉈 자기 짝을 찾는다고 해도 그것이 끝이 아니다. 그 짝을 다시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단 필요한 것은 혈연관계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나와 함께 나의 소유와 나의 배우자를 지키기 위한 가장 든든한 존재가 필요하다. 그것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대안이 혈연관계이다. 이 관계의 확립을 위해 일단 아이를 가질 필요가 있다. 남자든 여자든 아이가 생기게 되면 자신의 모든 중심이 아이가 된다. 그러면 이제 자신의 관심의 중심은 자연히 자신의 배우자에서 아이로 옮겨진다. 그럼 이제 아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의식주이다.

가족의 구성원이 늘어날수록 필요한 의식주 역시 점점 늘어난다. 전에는 혼자서도 나가서 사냥을 하고, 집을 고치고, 옷을 해 입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러기에는 자기 혼자 사냥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그러면 이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근처 동굴에 사는 누군가가 양을 다룰 줄 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에게 가서 양치는 방법을 전수받으려고 그를 찾아 간다. 그리고, 자신에게 양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양치는 목동이 모처럼 온 손님을 보니 특이한 옷을 입고 있다. 나도 저 옷을 입고 싶다. 그래서 목동은 그에게 옷을 만드는 방법을 물어본다. 계절도 없이 항상 똑 같은 양털로 대충 만든 옷을 입자니 덥기만 덥고 좋은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목동을 찾은 손님은 양치는 법을 알려 주면 자신이 옷 만드는 법을 알려 준다고 한다. 목동은 그에 수락하고 그를 재단사라고 부르기로 한다. 며칠 후 재단사가 만들어 준 옷은 이전까지 목동이 입던 옷과는 때깔부터 다르다. 목동이 재단사에게 제안한다. 만약 우리 가족이 입을 옷을 재단사가 만들어 준다면, 재단사의 양들을 목동이 관리하면서 새끼까지 칠 수 있도록 해 주겠단다. 재단사 역시 거절할 이유가 없다. 이로써 이들의 거래는 성립했다. 이렇게 두 가족이 서로 협조하기로 한 마당에 거리를 둘 필요가 없다. 재단사 가족은 목동과의 협의 끝에 목동의 동굴 안에 자리를 얻어 자신의 가족도 함께 살기 시작한다. 가장 기본적인 사회의 구조는 가족이라고 했던가가족의 범위를 넘어선 사회 구조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꼭 이런 식으로 시작된 사회 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아제한이나 그런 규범이 없던 시절에는 가족이 늘어나면 일꾼이 늘어나는 것이었고, 가족이 많을수록 주변에 그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성경에 나오는 야곱처럼 12명의 아들을 가질 정도가 되면, 그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주변의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할 것도 없이 가족 내에서 충분한 분업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초기 씨족사회 부족사회의 근간이 된다. 이런 하나의 씨족, 부족이 다른 씨족, 부족과 결혼을 통한 혈맹을 맺게 되면 그 사회는 더욱 커지게 되고 그들의 사회는 점차 더 발전하게 되며, 그들 중에 통솔력있고 연륜있는 대표를 세워 그들의 지도자를 삼게 된다.

왜 이렇게 되는 걸까

바로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서도 얘기했지만, 첫째로는 혼자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배워야 할 기술이 너무 많아서이고, 둘째로는 혼자 살기에는 외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은 게으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게으르다. 그러다 보니 편하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좀더 편하게, 많은 일을 하지 않고, 좀더 안전하게 살기 위해 사람은 사회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사회에 어울려 살기 위해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도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기술이고, 재능이다. 빵을 굽는 것도, 사냥을 하는 것도 모두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배우는 기술이고, 그런 기술을 제공함으로써 자신도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고, 그들과 어울려 함께 살며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왕 사회에 섞여서 그들과 함께 어울리며 적응해서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이왕 뭔가를 해야 한다면 자신이 남들보다 좀 더 잘 할 수 있고, 좀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뭔가를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것이 직업이 된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면 그런 재능을 자신이 갖고 있는 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뭐가 필요할까답은 없다. 일단 한 번 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 저것 해 보고 그것에서 재미도 느끼고, 보람도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곳에나 찾아가서 이것 저것 해 보기에는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직업이 존재한다. 그러면 이걸 어디서부터 시도해야 할까 걱정이 되기 마련이다. 이런 때 그 고민을 덜어주고, 그와 함께 그의 적성을 찾아 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부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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